개항과 개화·근대화 운동
Opening of the Ports and Reform Movements
나라의 문을 닫을지, 연다면 어떻게 열지를 두고 조선 사람들은 왜 서로 다른 길을 택했을까요?
개요
흥선대원군은 서양 세력의 침략을 물리치며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폈어요. 그러나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항구를 열었고, 이후 개화 정책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 일어났어요. 1894년에는 농민들이 동학 농민 운동을 일으켰고, 정부는 갑오개혁으로 신분제 폐지 같은 큰 변화를 추진했어요.
배경
- 서양 열강과 일본의 개항 요구와 무력 침략
- 세도 정치로 쌓인 정치 문란과 농민 수탈
- 새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자는 개화 사상의 성장
변화
- 불평등 조약 속의 개항과 외국 상인의 진출
- 청과 일본의 내정 간섭과 경쟁 심화
- 신분제 폐지 등 근대적 제도 개혁의 시작
주요 연표
- 1863년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정치의 실권을 잡았어요.
- 1866년평양에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일어나고,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했어요(병인양요).
- 1871년미군이 강화도를 침략했어요(신미양요). 이후 흥선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어요.
- 1876년운요호 사건을 구실로 한 일본의 압박 속에 강화도 조약을 맺고 부산을 비롯한 세 항구를 열기로 했어요(부산 1876, 원산 1880, 인천 1883).
- 1882년차별받던 구식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어요. 같은 해 조선은 서양 나라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과 조약을 맺었어요.
- 1884년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갑신정변을 일으켰지만,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했어요.
- 1894년전봉준 등이 이끈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어요. 청일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군국기무처가 갑오개혁을 추진했어요.
- 1895년일본이 명성 황후를 시해했어요(을미사변). 이어진 을미개혁으로 단발령이 내려지고 태양력 사용이 결정되었어요.
지도로 보기
- 평양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
- 강화도(초지진·광성보)병인양요·신미양요, 1876년 강화도 조약
- 부산1876년 개항
- 원산1880년 개항
- 제물포(인천)1883년 개항
- 한성 우정총국1884년 갑신정변
- 고부(정읍)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시작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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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용어
- 통상 수교 거부 정책
- 서양 나라와 무역하거나 국교를 맺지 않겠다는 흥선대원군의 정책이에요. 척화비에 그 뜻을 새겼어요.
- 치외 법권
- 외국인이 머무는 나라의 법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법으로 재판받는 권리예요. 강화도 조약에서 일본인에게 인정되어 조선의 주권이 침해되었어요.
- 개화파
-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여 나라를 바꾸자는 사람들이에요. 천천히 바꾸자는 온건 개화파와 빠르게 바꾸자는 급진 개화파로 나뉘었어요.
- 동학
- 최제우가 만든 종교로, 하늘님을 모신다는 시천주 사상(뒤에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으로 정리)을 내세워 신분 차별에 시달리던 농민들에게 널리 퍼졌어요.
- 갑오개혁
- 1894년부터 추진된 근대적 개혁이에요. 신분제와 과거제를 없애고, 조혼 금지와 과부의 재혼 허용 같은 사회 제도를 바꾸었어요.
원인 → 결과
원인프랑스와 미국이 강화도를 침략했어요(병인양요·신미양요).
결과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우고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더 강하게 밀고 나갔어요.
원인강화도 조약에 해안 측량권과 치외 법권 같은 불평등한 조항이 들어갔어요.
결과일본 상인과 세력이 조선에 빠르게 들어오고, 다른 나라들과도 불평등한 조약이 이어졌어요.
원인신식 군대인 별기군에 비해 구식 군인이 차별받고 급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결과임오군란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한 청이 조선의 내정에 깊이 간섭하게 되었어요.
원인고부 군수의 횡포와 외세의 경제 침탈로 농민의 삶이 어려워졌어요.
결과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청과 일본이 군대를 보내 청일 전쟁이 벌어졌어요.
원인농민들이 신분 차별 폐지와 부패 관리 처벌을 요구했어요.
결과갑오개혁에서 신분제 폐지 등 농민의 요구 일부가 제도로 반영되었어요.
사료 읽기
‘조선국은 자주의 나라이며 일본국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평등을 말하는 조항 같지만, 조선과 청의 오랜 관계를 끊어 일본이 조선에 쉽게 들어오려는 뜻이 담겨 있었어요. 같은 조약에는 해안 측량권과 치외 법권처럼 조선에 불리한 조항도 들어 있었어요.
- 이 조약은 어떤 상황에서, 누구의 압박으로 맺어졌나요? 일본이 첫 조항에 ‘조선은 자주의 나라’라는 말을 넣고 싶어 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 제1관은 두 나라의 평등을 강조해요. 같은 조약의 해안 측량(제7관)과 영사 재판(제10관) 조항, 그리고 뒤이은 무역 규칙에서 빠진 관세 규정은 이 ‘평등’과 어떻게 어긋나나요?
- 조약문은 두 나라가 합의한 공식 문서예요. 그렇다면 조약문만 읽고 두 나라의 실제 관계를 판단해도 될까요? 무엇을 더 살펴봐야 할까요?
가 볼 곳·볼 것
이 단원과 이어지는 유적과 박물관이에요. 전시물과 관람 조건은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에 확인하세요.
- 강화 초지진과 광성보인천 강화군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함대와 맞섰던 요새(초지진은 1875년 운요호 사건의 현장이기도 해요)로, 통상 거부 정책이 실제 전투로 이어진 현장을 볼 수 있어요.
- 우정총국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1884년 근대 우편 업무를 시작한 관청으로, 개화파가 그 개국 축하연을 틈타 갑신정변을 일으킨 곳이에요.
- 정읍 황토현 전적지와 동학농민혁명기념관전북 정읍시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이긴 곳으로, 농민들이 요구한 개혁 내용을 전시에서 확인해 보세요.
확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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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기
갑신정변은 김옥균 같은 소수의 급진 개화파가 일본의 도움을 기대하며 정변이라는 방법으로 ‘위에서부터’ 개혁하려 했어요. 청의 간섭을 끊고 문벌을 없애며 인민 평등을 이루자고 했지만, 백성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청군이 개입해 3일 만에 실패했어요. 동학 농민 운동은 많은 농민이 무장 봉기라는 방법으로 ‘아래에서부터’ 일어났어요. 부패한 관리를 벌하고 신분 차별을 없애며 외세를 몰아내자고 요구했어요. 두 운동은 방법과 주체는 달랐지만 신분 차별을 없애자는 요구는 겹쳤고, 그 일부가 갑오개혁에 반영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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