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갈등과 평화
History Disputes and Peace in East Asia
독도, 동북공정, 역사 교과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사료로 살펴보면, 갈등을 넘어 평화와 공존으로 가는 길이 보일까요?
개요
동아시아에는 지금도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갈등이 있어요. 독도는 『세종실록』 지리지(1454)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1900) 등 여러 기록으로 뒷받침되는 우리 땅이며 대한민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로 편입했다며 영유권을 주장해요. 중국은 2002년부터 동북공정이라는 국가 연구 사업을 벌여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보는 주장을 펴 한국과 갈등을 빚었어요.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뒤,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법적 책임을 요구해 왔어요. 1982년과 2001년 등 일본 역사 교과서의 침략 서술을 둘러싼 논란도 되풀이되었어요. 한편 한·중·일 학자와 교사들이 함께 역사 교재를 만드는 등, 사료에 근거해 대화하며 평화와 공존을 찾으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어요.
배경
-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 지배의 역사를 둘러싼 서로 다른 기억
- 영토·해양 자원과 국가 정체성이 걸린 이해관계
- 역사를 자기 나라 중심으로만 해석하려는 정치적 움직임
변화
- 사료를 모으고 연구하는 기관(동북아역사재단 등)과 시민 운동의 활동
- 피해자 증언을 계기로 넓어진 전쟁 속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 인식
- 한·중·일 공동 역사 교재처럼 국경을 넘는 대화와 교육의 노력
주요 연표
- 1454년『세종실록』 지리지가 완성되었어요. 울진현 동쪽 바다의 우산·무릉 두 섬이 맑은 날 서로 바라보인다고 적었어요.
- 1900년 10월대한제국이 칙령 제41호를 반포해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높이고, 울릉 전도와 죽도·석도(독도)를 관할하게 했어요.
- 1905년 2월러·일 전쟁 중에 일본이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며 자기 영토에 편입했다고 주장했어요. 대한제국은 이 사실을 1906년에야 알게 되었어요.
- 1991년 8월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했어요. 이듬해 1월부터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 시위가 열리기 시작했어요.
- 1993년 8월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를 발표해 위안소 설치와 관리에 일본군이 관여했고 동원이 본인들의 뜻에 반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사과했어요.
- 2002년중국이 동북공정(동북 변경 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사업)을 시작해 고구려·발해를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보는 연구를 펼쳤어요.
- 2005년한·중·일 세 나라의 학자와 교사, 시민 단체가 함께 만든 공동 역사 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가 세 나라에서 동시에 출간되었어요.
- 2015년 12월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지만, 피해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았다는 비판이 커졌고 합의에 따라 만든 재단은 2019년 해산되었어요.
지도로 보기
- 울릉도1900년 칙령 제41호로 울도군이 된 섬
- 독도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87 km
- 마쓰에(시마네현청)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 서울1992년부터 이어진 수요 시위
- 지안고구려 유적이 있는 곳, 동북공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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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용어
- 실효적 지배
- 한 나라가 어떤 영토에서 실제로 행정·입법·사법 권한을 평화적이고 지속적으로 행사하는 것이에요. 대한민국은 독도에 경비대를 두고 등대와 주민 숙소를 운영하는 등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어요.
- 동북공정
- 중국 사회과학원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한 국가 연구 사업이에요.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서술해 한국 학계와 정부가 반발했어요.
- 일본군 ‘위안부’
- 일제가 침략 전쟁을 벌이던 1930~40년대에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인권을 짓밟힌 여성들이에요. ‘위안’이라는 말은 가해자 쪽의 표현이어서 작은따옴표를 붙여 써요.
- 공동 역사 연구
- 여러 나라의 학자가 함께 사료를 읽고 역사를 연구하는 일이에요. 한·일 역사 공동 연구 위원회(2002~2010)와 한·중·일 공동 역사 교재 편찬 등이 있어요.
원인 → 결과
원인일본이 러·일 전쟁 중이던 1905년, 대한제국에 알리지 않은 채 독도를 편입했다고 주장했어요.
결과한국은 이를 국권 침탈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행위로 보고, 광복과 함께 되찾은 독도를 지금까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어요.
원인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발해를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고 주장했어요.
결과한국 정부와 학계가 반발해 2004년 고구려연구재단을 세웠고, 이는 2006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이어져 역사 연구와 대응을 맡고 있어요.
원인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뒤 여러 나라의 피해자들이 잇달아 목소리를 냈어요.
결과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쟁 속 여성 인권 침해로 세계에 알려졌고, 유엔 인권 기구 등이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권고했어요.
사료 읽기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두 섬이 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 불고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이라 하였다.’ 조선 정부가 펴낸 공식 지리지로, 무릉은 울릉도, 우산은 독도를 가리킨다고 보아요. 울릉도에서 약 87km 떨어진 독도는 맑은 날에만 눈으로 보이므로,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는 대목은 울릉도 바로 옆의 작은 섬(죽도)이 아니라 맑은 날에만 보이는 독도를 가리킨다는 근거가 돼요. 일본 측은 우산이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므로,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처럼 다른 시기의 기록과 함께 비교하며 읽어요.
- 『세종실록』 지리지는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만든 책일까요?
- ‘바람 불고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는 대목이 우산을 독도로 보는 근거가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 이 기록 하나만으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1900년 칙령 제41호나 1877년 태정관 지령 같은 다른 시기의 기록과 비교하면 좋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가 볼 곳·볼 것
이 단원과 이어지는 유적과 박물관이에요. 전시물과 관람 조건은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에 확인하세요.
- 독도박물관경북 울릉군 울릉읍(울릉도)
독도에 관한 옛 지도와 문헌 자료를 전시하는 곳으로, 독도 자체는 쉽게 갈 수 없으니 이곳에서 옛 지도와 문헌이 독도를 어떻게 기록했는지 살펴보세요.
-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부산 남구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를 기록한 국립 역사관으로, 오늘날 한일 사이의 역사 갈등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줘요.
확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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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기
독도를 고르면, 1454년 『세종실록』 지리지는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이 맑은 날 서로 보인다고 적어 조선이 두 섬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줘요.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울도군이 석도(독도)를 관할한다고 밝혀, 일본의 1905년 편입 주장보다 앞서 근대 법령으로 영토임을 분명히 했어요. 일본의 편입은 러·일 전쟁 중 일본이 대한제국의 주권을 빼앗아 가던 때 이루어졌다는 점도 중요해요. 1877년 일본 태정관 지령처럼 일본 정부 스스로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고 한 기록도 있어요. 평화와 공존을 위해서는 감정적으로 맞서기보다 사료를 공개하고 함께 읽는 공동 연구, 학생 교류와 공동 교재 만들기처럼 서로의 기억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어요.
정답은 하나가 아니에요.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면 다른 답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