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로마
Greece and Rome
작은 도시 국가와 거대한 제국은 오늘날의 정치와 법에 무엇을 남겼을까요?
개요
기원전 8세기 무렵 그리스에는 아테네·스파르타 같은 수많은 폴리스(도시 국가)가 생겨났어요. 아테네에서는 시민이 민회에 모여 나랏일을 직접 정하는 민주 정치가 발달했지만, 여성과 노예, 외국인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어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으로 그리스 문화와 동방 문화가 어우러진 헬레니즘 문화가 퍼졌고, 이탈리아의 로마는 공화정 아래 지중해를 차지한 뒤 황제가 다스리는 제정으로 바뀌었어요. 로마의 법과 도로, 로마 제국에서 퍼진 크리스트교는 뒷날 유럽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제국이 동서로 나뉜 뒤 476년 서로마 제국이 무너졌어요.
배경
- 산이 많고 해안선이 복잡한 지형과 지중해 교역
- 페르시아 전쟁에서 커진 평민의 역할과 발언권
- 정복 전쟁으로 넓어진 영토를 다스릴 법과 제도의 필요
변화
-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아테네 민주 정치와 그 한계
- 알렉산드로스의 정복과 헬레니즘 문화의 확산
- 로마법·도로망과 크리스트교의 확산, 서로마 멸망 뒤 중세 유럽으로의 전환
주요 연표
- 기원전 8세기 무렵그리스 곳곳에 아테네·스파르타 같은 폴리스(도시 국가)가 생겨났어요.
- 기원전 509년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웠다고 전해요.
- 기원전 508년 무렵아테네의 클레이스테네스가 개혁을 펼쳐 민주 정치의 바탕을 놓았어요.
- 기원전 490년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했지만 아테네가 마라톤 전투에서 이겼어요. 그리스는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도 승리했어요.
- 기원전 431년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되었어요(기원전 404년 아테네 항복).
- 기원전 334년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원정을 시작해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인도 서북부까지 나아갔어요.
- 기원전 27년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으며 로마가 사실상 황제가 다스리는 제정으로 바뀌었어요.
- 476년서로마 제국이 멸망했어요.
지도로 보기
- 아테네민주 정치가 자란 폴리스
- 스파르타아테네와 맞선 폴리스
- 펠라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난 마케도니아의 도읍
- 로마공화정과 제정의 중심
- 알렉산드리아알렉산드로스가 세운 이집트의 항구 도시
-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330년 로마 제국의 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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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용어
- 폴리스
-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예요. 성벽 안의 도시와 둘레의 농촌으로 이루어졌고, 언덕 위의 신전(아크로폴리스)과 시민이 모이는 광장(아고라)이 중심이었어요.
- 직접 민주 정치
- 시민이 대표를 뽑지 않고 민회에 직접 모여 나랏일을 토론하고 결정하는 방식이에요. 아테네에서는 많은 관리를 추첨으로 뽑았어요.
- 헬레니즘 문화
-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뒤 그리스 문화와 이집트·서아시아 등 동방 문화가 어우러져 생긴 문화예요.
- 공화정
- 왕 없이 선거로 뽑힌 관리와 원로원 같은 기관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 체제예요. 로마는 귀족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평민의 권리도 점차 넓어졌어요.
원인 → 결과
원인페르시아 전쟁 때 가난한 시민들이 전함의 노를 저으며 승리에 크게 기여했어요.
결과평민의 정치적 발언권이 커져,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 때 아테네 민주 정치가 전성기를 맞았어요.
원인알렉산드로스가 이집트에서 인도 서북부에 이르는 큰 제국을 세우고 곳곳에 도시를 세웠어요.
결과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가 널리 퍼지고 동방 문화와 섞여 헬레니즘 문화가 생겨났어요.
원인로마의 평민들이 귀족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어요.
결과기원전 450년 무렵 12표법이 만들어져 법이 글로 공개되었고, 로마법은 뒷날 유럽 여러 나라 법의 바탕이 되었어요.
사료 읽기
‘우리의 정치 체제는 이웃 나라의 법을 본뜬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남들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권력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에게 있으므로 이를 민주 정치라고 부릅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첫해에 전사한 아테네 시민을 기리며 페리클레스가 한 연설이에요. 투키디데스는 연설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 아니라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썼다고 스스로 밝혔어요. 또 여기서 말하는 ‘다수’는 성인 남성 시민이었고 여성과 노예, 외국인은 빠져 있었다는 점도 함께 생각해 보세요.
- 이 연설은 누가, 언제, 어떤 자리에서 했고, 누가 기록했나요? 전쟁 첫해 전사자 추도식에서 아테네의 정치 체제를 자랑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 연설은 권력이 ‘다수’에게 있다고 강조해요. 이 ‘다수’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 투키디데스는 연설을 그대로 받아 적지 않고 다시 썼다고 밝혔어요. 그렇다면 이 연설은 페리클레스의 생각, 투키디데스의 생각 가운데 무엇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가 볼 곳·볼 것
이 단원과 이어지는 유적과 박물관이에요. 전시물과 관람 조건은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에 확인하세요.
-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그리스 아테네
민주정이 꽃핀 도시 국가 아테네가 공동체의 자부심을 신전 건축으로 어떻게 드러냈는지 보세요.
- 폼페이 유적이탈리아 나폴리 근처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묻힌 로마 도시로, 길·가게·목욕탕에서 로마인의 일상을 그대로 볼 수 있어요.
- 로마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이탈리아 로마
공화정과 제정의 정치 중심지였던 광장과 거대한 경기장에서 로마가 시민과 제국을 어떻게 묶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확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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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기
참여할 수 있는 사람: 아테네에서는 성인 남성 시민만 참여했고 여성·노예·외국인은 빠졌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일정한 나이(만 18세) 이상의 모든 국민이 성별이나 재산과 상관없이 선거권을 가져요. 결정하는 방식: 아테네는 시민이 민회에 직접 모여 투표하고 많은 관리를 추첨으로 뽑았지만, 오늘날 한국은 국민이 대통령과 국회의원 같은 대표를 뽑아 결정을 맡기는 대의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하고, 헌법 개정 때의 국민 투표처럼 직접 참여하는 제도도 함께 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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