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시대와 고조선
Prehistoric Korea and Gojoseon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던 사람들은 어떻게 첫 국가를 세우게 되었을까요?
개요
한반도와 만주에서는 약 70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뗀석기를 쓰며 사냥과 채집으로 살았어요. 신석기 시대에는 간석기와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고 농사를 짓기 시작해 강가와 바닷가에 마을을 이루었어요. 청동기 시대에 농업 생산이 늘어 남는 생산물과 빈부 차이가 생기자, 고인돌을 만들 만큼 힘센 지배자가 나타났어요. 이런 변화 속에서 등장한 고조선은 철기 문화를 받아들이며 성장했지만, 기원전 108년 한(漢)의 공격으로 무너졌어요.
배경
- 농경과 정착 생활로 늘어난 인구
- 청동기 사용과 남는 생산물이 만든 빈부 차이와 계급
- 여러 부족을 거느린 군장의 등장과 철기 문화의 수용
변화
- 떠돌이 생활에서 정착 마을 생활로
- 지배층과 계급이 있는 사회의 등장
- 고조선의 성립과 법(8조법)에 따른 사회 질서
주요 연표
- 약 70만 년 전한반도와 만주에서 구석기 시대가 시작되어 사람들이 뗀석기를 쓰며 사냥과 채집으로 살았어요.
- 기원전 8000년 무렵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어 간석기와 빗살무늬 토기를 쓰고, 뒤이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 기원전 2333년(전통 연대)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전하는 해예요. 조선 시대 『동국통감』 등이 옛 기록을 바탕으로 계산한 연도로, 고고학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에요.
- 기원전 2000~1500년 무렵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어 청동 검과 거울, 민무늬 토기, 고인돌이 만들어졌어요.
- 기원전 5세기 무렵철기가 들어오기 시작해 철제 농기구와 무기가 점차 널리 쓰였어요.
- 기원전 4세기 무렵고조선의 지배자가 ‘왕’이라 부르고 중국의 연(燕)과 맞설 만큼 세력을 키웠어요.
- 기원전 194년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고조선의 왕이 되었어요.
- 기원전 108년한(漢) 무제의 공격으로 도읍 왕검성이 함락되어 고조선이 멸망했어요.
지도로 보기
- 연천 전곡리 유적구석기 주먹도끼가 나온 곳
- 서울 암사동 유적신석기 움집 마을
- 강화 부근리 고인돌청동기 무덤, 세계유산
- 고창 고인돌 유적청동기 무덤, 세계유산
- 화순 고인돌 유적청동기 무덤, 세계유산
- 평양고조선 도읍 왕검성이 있던 곳으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요동설 등도 있어요
순서 맞히기
선사 시대부터 고조선까지, 일어난 차례대로 놓아 보세요.
먼저 일어난 일부터 차례로 눌러요. 놓은 카드를 다시 누르면 빠져요. 기록은 저장하지 않아요.
0/4 골랐어요.
핵심 용어
- 뗀석기와 간석기
- 뗀석기는 돌을 깨뜨리거나 떼어 내 만든 구석기 시대의 도구이고, 간석기는 돌을 갈아 날카롭게 다듬은 신석기 시대의 도구예요.
- 빗살무늬 토기
- 겉면에 빗살 같은 무늬를 새긴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예요. 곡식을 저장하거나 음식을 조리하는 데 썼어요.
- 고인돌
- 청동기 시대 지배층의 무덤이에요. 큰 돌을 옮기려면 많은 사람을 동원해야 했으므로 지배자의 힘을 보여 줘요.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에요.
- 8조법
- 고조선 사회의 법으로, 중국 역사책 『한서』에 세 조항이 전해요. 사람을 죽이면 사형, 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갚고, 도둑질하면 노비로 삼는다는 내용이에요.
원인 → 결과
원인신석기 시대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결과먹을 것을 찾아 옮겨 다니던 사람들이 강가와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어 살게 되었어요.
원인청동기 시대에 농업 생산이 늘어 남는 생산물이 생겼어요.
결과재산과 힘의 차이가 벌어져 계급이 생기고, 여러 부족을 거느린 군장이 나타났어요.
원인고조선이 철기 문화를 받아들이고 한과 주변 나라 사이의 교역을 중계하며 성장했어요.
결과고조선을 경계한 한 무제가 쳐들어와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멸망했어요.
사료 읽기
‘『위서』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불렀으니, 요임금과 같은 때였다.’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옛 기록을 모아 엮은 책으로, 곰이 사람이 된 이야기처럼 신화의 형식을 띠고 있어요. 그대로의 사실이라기보다, 하늘의 자손을 자처한 집단과 곰을 섬기던 집단이 합쳐진 과정이나 농사를 중시한 사회 모습을 담은 이야기로 읽어요. 몽골의 침입을 겪고 원의 간섭을 받던 시기에 쓰였다는 점도 함께 생각해 보세요.
- 이 글은 누가, 언제 썼나요? 몽골의 침입을 겪은 뒤에 단군 이야기를 책 맨 앞에 실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 이야기는 단군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점을 강조해요. 반대로 이 글에서 알기 어려운 고조선 사람들의 생활은 무엇일까요?
- 천 년도 더 지난 뒤에 옛 기록을 옮겨 쓴 글이에요. 이 이야기에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과 신화로 읽어야 할 부분을 나누어 보세요.
가 볼 곳·볼 것
이 단원과 이어지는 유적과 박물관이에요. 전시물과 관람 조건은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에 확인하세요.
- 연천 전곡리 유적과 전곡선사박물관경기 연천군 전곡읍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이어서, 구석기 사람들이 돌을 깨뜨려 만든 도구를 실제 출토지에서 떠올려 볼 수 있어요.
- 강화 부근리 고인돌인천 강화군 하점면
세계유산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의 탁자식 고인돌로, 거대한 덮개돌을 옮길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던 청동기 지배자의 힘을 가늠해 보세요.
-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서울 용산구
뗀석기에서 빗살무늬 토기, 비파형 동검으로 이어지는 전시를 따라가며 도구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와 어떻게 맞물렸는지 살펴보세요.
확인 문제
0/5 문항을 풀었어요.
생각해 보기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부분은 있었던 일 그대로라기보다 신화로 보아야 해요. 그래도 ① 환웅이 바람·비·구름을 다스리는 신하(풍백·우사·운사)를 거느렸다는 대목은 농사를 중요하게 여긴 사회였음을 보여 주고, ② 하늘의 자손을 자처한 집단과 곰을 섬기던 집단이 합쳐졌다는 해석은 여러 부족이 연합해 나라를 이루었음을 보여 줘요. ③ ‘단군왕검’이라는 이름은 제사장(단군)과 정치 지도자(왕검)의 역할을 한 사람이 맡았던 사회였음을 짐작하게 해요.
정답은 하나가 아니에요.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면 다른 답도 좋아요.